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ページ番号:0000144630更新日:2020年3月25日更新印刷ページ表示

히로시마시의 자매 도시 및 우호도시

호놀룰루

ホノルル

《프로필》

 하와이 주의 주도인 호놀룰루는 이 주의 정치, 경제의 중심지로 주 인구의 약 70%가 살고 있습니다. 호놀룰루란 ‘대피 항’을 의미하는 하와이어로 일찍이 포경선의 보급지이기도 했습니다. 아름다운 풍경과 리조트지 또한, 일 년 내내 쾌적한 기후로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습니다.

하와이는 전 세계에서 많은 이민을 받아들인 곳으로 유럽계, 아시아계, 폴리네시아계의 다양한 민족 문화가 융합된 다문화 사회입니다. 일본에서도 1885년부터 1894년까지의 10년 동안 약 3만 명의 사람들이 사탕수수 농업 등에 종사하기 위해 이주했는데 그 중 3분의 1 정도가 히로시마 출신이었습니다.
 산업은 관광산업이나 상업이 중심으로 그 외에 파인애플과 설탕 관련 공업이 있습니다. 태평양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는 지리적 특성을 살려 관광·리조트 도시로서뿐만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하늘과 바다 교통의 요충지로서 또한, 하이테크 산업과 환경 보전, 도시 문제 등의 분야의 거점으로서 더 나은 발전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제휴 동기·경위》

 호놀룰루시는 히로시마 최초의 자매도시입니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국과의 인적 교류나 문화 교류가 활발해진 것과 또한, 1950년대에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제창한 ‘People to People Program’ 즉 세계 평화를 위하여 각국의 시민이 직접 교류하고 서로 이해하기 위하여 미국 도시와 외국 도시와의 자매결연을 장려하는 운동 등을 배경으로 일미 간의 제휴 분위기가 무르익어 갔습니다.
 1959년 5월 19일, 호놀룰루 시의회가 본시에 대한 자매 제휴 초청을 결의하고 본시에 제휴를 제의해 왔습니다. 이에 따라 같은 해 6월 15일, 히로시마 시의회에서 인구 규모도 거의 엇비슷하고 호놀룰루에 히로시마 출신자도 많고 서로 친근감을 느끼는 것 등에서 ‘양 시민의 연계에 의해서… 상호 신뢰와 이해를 깊게 하고 일미 양국 간의 우호 친선에 더욱 이바지할 것을 확신’하고 수락을 결의하여 제휴가 체결되었습니다.

볼고그라드

ボルゴグラード

《프로필》

 카스피 해로 흘러 들어가는 러시아 남서부의 큰 강인 볼가 강 하류 유역에 위치하고 볼가 강을 따라 폭 3∼9km, 길이 약 80km 유역에 발달한 가늘고 긴 도시입니다. 1925년까지는 차리친이라고 불리고 그 후 1961년까지는 스탈린그라드라고 불렸습니다.

 1589년 볼가 강 요새로 건설되어 19세기 후반에는 하천 연안에 발달된 항구와 수운을 이용한 공업의  중심지로 발전했습니다. 러시아 혁명 후는 국내 굴지의 산업, 문화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942년 7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계속된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전체 주택의 85%가 파괴되고 시내는 폐허화되어 전쟁 전의 150만 명에 달했던 인구가 전쟁이 끝났을 때는 3만 2천  명으로 50분의 1로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재빨리 재건되어 철강, 기계, 목재 가공 등의 주요 산업을 보유한 러시아 유수의 도시 중 하나로 되었습니다. 또한, 미술관, 극장 등의 문화 시설과 극단, 교향악단, 서커스 등의 문화 활동도 활발합니다.

《제휴 동기·경위》

 1961년 8월, 스탈린그라드 시(현재 볼고그라드 시)에서 본시에 제휴를 희망하는 전보가 도착했습니다. 이것은 도쿄와 모스크바, 오사카와 레닌그라드(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 각각의 제휴로서 소련 정부에 의해 제창된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두 도시 간의 인적 교류와 문화 교류가 시작되어 우호를 돈독하게 해 왔습니다.

 1968년 5월 18일, 히로시마 시 친선 사절단이 볼고그라드 시를 방문했을 때 두 도시의 시장이 자매도시 제휴 협정서에 서명했습니다. 협정서에는 두 도시가 ‘원폭 내지 재래식 병기에 의해 인류 역사상 전대미문의 전쟁 피해를 몸소 체험한 사실에 비추어…, 두 도시가 세계 평화를 이루기 위하여 힘을 합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며 ‘상호 이해, 존경과 우호를 증진시킨다는 기초 위에 서서’ 자매 관계를 확립할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 후 국제 정세의 변화에 따라 이 협정에 대한 시의회에서의 승인은 일시 유보되었으나 1972년 9월 28일에 볼고그라드 시 집행위원회 의장(시장에 상당) 을 비롯한 친선 사절단을 맞이했을 때 히로시마 시의회에 의해 승인되어 제휴가 체결되었습니다.

하노버

ハノーバー

《프로필》

하노버 시는 니더작센 주의 주도로 주변 20 시정촌을 합친 대도시권 인구는 약 106만 명입니다. 18세기 영국 국왕도 겸한 하노버 왕가의 왕궁 정원이 남아 있는 우아한 도시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88번의 공습을 받아 도시의 60%가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중세 시대부터 전통 있는 뛰어난 도시 계획으로 다시 ‘녹음 속의 대도시’로 불리는 독일에서 12번째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현재 주도로서 정치, 경제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지리적 특성을 살려 도로, 철도 교통의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박물관, 미술관, 극장, 갤러리 등 많은 시설을 보유한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합니다.

산업은 자동차, 항공기, 전기기계, 화학제품 등의 제조업이 활발하고 세계 최대급의 메세(견본시) 행사장을 보유하고 있어 ‘공업제품의 세계의 쇼윈도’라고도 불리고 있습니다.

2000년에는 독일 최초로 엑스포(국제박람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제휴 동기·경위》

1968년 일본과 독일의 문화 협정에 따라 청소년 교류 일본 대표단으로 히로시마 국제 청소년협회 총 주사가 히로시마 시 대학생 2명을 포함한 청소년 130명을 인솔하여 하노버를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되어 히로시마 시와 하노버 시의 청소년 상호 방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청소년 교류의 축적이 이후의 자매도시 제휴의 계기가 되어 1972년에 히로시마 시장이 처음으로 하노버를 방문하여 행정 간에도 인적 교류가 활발해져 갔습니다. 이러한 민간과 행정의 교류를 통해 두 도시 간의 우호 관계가 돈독해져 제휴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1983년 5월 27일, 히로시마 시장과 시의회 대표가 하노버 시에서 자매도시 제휴 협정서에 조인했습니다.

협정서에는 ‘두 도시 및 그 시민은 각각의 역사 속에서 전쟁의 참화를 체험하고 오늘날 양국의 대표적인 도시로서 되살아난 사실에 비추어… 세계 평화의 확립을 위하여 함께 헌신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앞으로 더욱 상호 존경과 신뢰 및 이해를 증진하기 위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상호 교류 촉진을 도모’해 갈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충칭

重慶

《프로필》

충칭 시는 중국 서남부 최대의 상공업 중심지로 직할시*로서는 중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입니다.

창장강과 그 지류의 자링강과의 합류점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아름다운 산들에 둘러싸여 있어 ‘산성(산 마을)’이라고도 불립니다. 충칭은 예로부터 수상 교통의 요충지로서 번성해 왔습니다. 약 3000년 전의 주나라 ‘파국(巴国)’의 도읍지였는데 그 후 ‘파군(巴郡)’으로 진나라의 관할로 되었습니다. 남북조 시대 ‘파군’은 ‘추저우’로 되고 수나라에 이르러 ‘추저우’는 자링강의 옛 명칭 ‘위수이’를 따서 ‘위저우(渝州)’가 되었습니다. 이 ‘위(渝)’가 충칭의 약칭으로서 현재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현재는 수송용 기계, 금속, 의약품, 식품 등 다양한 분야의 산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중국 공업 거점의 하나로 되어 있습니다. 한편, 물과 녹음이 풍부한 충칭은 다수의 문화재와 경승지 등 관광 자원도 풍부한 도시입니다. 천극이라 불리는 전통 가극 등 전통문화의 계승에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직할시:중국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성과 같은 수준의 도시. 충칭시는 1997년에 직할시로 승격. 그 외에 베이징시, 상하이시, 톈진시의 3도시가 있음.)

《제휴 동기·경위》

1980년부터 히로시마 시의회 방중단이 충칭 시를 계속 방문했던 것이 계기가 되어 두 도시 간의 행정 관계자에 의한 상호 방문 등의 교류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본시와 충칭 시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고 부흥을 향한 시민의 끊임없는 노력과 평화에 대한 의식이 높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또한, 1984년에 히로시마현이 쓰촨성(당시 충칭 시는 이 성에 속해 있었음)과 우호 제휴를 한 것도 본시와 충칭  시와의 제휴의 분위기를 무르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1986년 10월 23일, 본시는 충칭 시장 및 인민 대표 대회(시의회에 상당) 대표를 맞이하여 보다 나은 교류의 전개를 도모하는 출발점으로서 우호 도시 제휴 협정에 조인했습니다. 협정서에는 두 도시 및 시민은 ‘우호 친선 및 상호 이해를 더욱 돈독하게 하고 일중 양국 국민의 세세대대에 걸친 우호 관계의 촉진과 아시아 및 세계 평화에 기여하기 위하여… 여러 분야에서 협력과 교류 실현을 위해 노력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대구

テグ

《프로필》

예부터 서울과 부산 사이의 교통 요충지로서 또한, 영남 지방의 경제·교육·문화의 중심지로서 발전했습니다. 또한, 한약재의 집산지로서도 유명합니다.

1930년대부터 섬유 산업이 발달하여 대구 경제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습니다. 현재는 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패션·디자인, 어패럴 산업의 진흥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기계 설비, 자동차 부품, 안경테, 우산, 알루미늄제 생활용품 등의 산업도 활발합니다. 2009년 8월에는 한국 정부로부터 첨단의료 복합단지의 사업지로서 지정되었습니다.

동화사 등 수많은 사찰과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외에 주변의 경주, 안동, 해인사 등으로의 관광 거점으로서 관광 진흥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한국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한국 프로축구 K리그 대구 Fc의 본거지이기도 합니다.

또한, 2002년 월드컵 축구 대회와 2003년 유니버시아드 하계 대회를 개최한 외에 2011년 8월에는  세계 육상경기 선수권대회가 개최되어 국제도시로서 한층 더 비약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제휴 동기·경위》

대구광역시와는 1980년대부터 주로 스포츠 분야에서 교류가 이루어져 왔지만 1994년 아시아 경기대회 히로시마 1994를 계기로 시민들 사이에 아시아 각국과의 교류 의식이 싹터 한국과의 우호 증진의 분위기도 무르익었습니다. 대구광역시와도 스포츠 교류회의 상호 개최와 여성 지도자의 상호 방문이 이루어진 외에 방송국이나 세무사 단체, 사립 대학 등 민간단체가 자매결연을 맺고 교류가 활발해졌습니다. 또한, 초등학생들의 교류, 친선의 날개·시민 방문단이나 청년 친선 방문단의 파견 등을 통해 두 도시 간의 자매 제휴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갔습니다.

1997년 5월 2일, 히로시마시에서 두 도시의 시장 및 시의회 의장이 자매도시 제휴에 조인했습니다.

몬트리올

モントリオール

《프로필》

퀘벡 주 최대의 도시로 인구 180만 명, 캐나다 3대 도시 중 하나입니다. 1976년에는 몬트리올 올림픽이 개최되었습니다.

북미를 대표하는 근대 도시, 국제도시로서의 일면과 ‘북미의 파리’라고도 불리는 옛 유럽의 전통과 문화의 정취를 겸한 도시로 프랑스 문화를 기반으로 영국계 및 그 외 여러 소수 민족 문화를 융합한 독특한 도시이기도 합니다. 또한, 세계 유수의 규모를 자랑하는 식물원이 있는 외에 교향악단과 오페라 극단의 정기연주회, 국제 불꽃축제, 국제 재즈페스티벌, 국제 영화제 등 다채로운 이벤트로도 유명합니다. 산업은 전기통신, 항공 우주, 약품, 석유화학, 식품 등이 주요 산업으로 대체로 하이테크 산업이나 IT, 바이오 등 첨단 산업이 활발합니다.

《제휴 동기·경위》

1986년 히로시마 시장이 몬트리올 시에서 개최된 ‘평화와 안전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강연한 것이 계기가 되어 교류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대표단의 상호 방문을 비롯하여 세계평화 연대도시 시장회의(현재 평화시장회의)와 평화기념식전에 히로시마 시 대표로의 참가 등 평화 추진에 관한 교류와 식물원 간의 교류 등을 해 온 외에 양국 간 교류 단체에 의한 시민 방문단의 파견, 경제 미션 방문 등의 교류를 거듭하여 자매 도시 제휴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갔습니다.

1998년 5월 19일, 히로시마 시장 및 시의회 의장 외에 히로시마시 방문단이 몬트리올을 방문했을 때 자매도시  제휴에 조인했습니다. 제휴 협정서에는 두 도시는 ‘폭넓은 교류를 통해 서로를 발전시키고 시민 간의 상호 이해와 친선을 촉진하고 세계 영구 평화에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